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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짜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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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라바짜 히스토리] 1기 1895~1949_ 토리노 식료품점에서 시작된 커피 혁명
작성자 라바짜몰 (ip:1.221.107.180)
  • 작성일 2022-04-29 19: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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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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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여 년의 역사, 연간 170억 잔 소비, 전 세계 에스프레소 시장 1위." 

이태리 라바짜 커피의 면면입니다. 에스프레소 커피의 고향 이태리에서 라바짜의 역사는 곧 세계 에스프레소 커피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라바짜의 역사는 3기로 구분됩니다. 1895년 창립부터 창립자가 세상을 뜬 해까지 1기, 이후 창립 100주년까지 2기, 현재까지가 3기입니다.

라바짜는 어떻게 이태리에서 최고가 되었는가, 어떻게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는가, 100년 이상 기업을 유지, 발전시킨 비결은 무엇인가. 3회에 걸쳐 라바짜 커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이태리 북부, 알프스 산맥 아래에 있는 토리노는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기원전 218년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점령한 곳이 토리노입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은 1946년 국민투표에 의한 왕정폐지로 사라졌습니다.



초창기 라바짜 로고가 새겨진 패키지 디자인



1895년 라바짜 커피 첫발

1895년 이곳 토리노 중심가에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온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루이지 라바짜(Luigi Lavazza)로 나이는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1859년 토리노 변두리 마을, 무리센요에서 태어난 그는 토리노 중심가에서 10년 동안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사업가적 기질을 몸에 익혔습니다.

창립자인 루이지 라바짜


10년간의 노력 끝에 라바짜는 식료품점을 매입해 1895년 사업가로서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라바짜 커피의 시작입니다. 그는 향신료, 오일, 커피, 비누 등을 취급했는데, 소매점에 머무르지 않고 식료품 제조에 눈을 뜨지요. 그것은 바로 커피. 라바짜는 1897년 커피를 로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이지 라바짜와 가족들. 그는 4명의 자녀를 두었다. 


블렌딩 기법 최초 개발

그는 열정적인 기업가였을 뿐 아니라 창의적인 인물이었어요. 세계 최대 커피생산국인 브라질을 방문해 커피 지식을 쌓기도 했지요. 1910년 여러 산지의 원두를 섞어 로스팅하는 블렌딩 기법을 개발해 차별화된 맛과 향을 구현했습니다. 블렌딩 커피는 라바짜에서 시작되었고, 이에 힘입어 라바짜 커피는 일찍이 이태리 최고의 커피로 자리 잡았습니다.


루이지 라바자는 산지별 원두를 섞어 로스팅 하는 기법을 최초로 고안했다. 


라바짜의 창의력은 마케팅에서도 힘을 발휘했습니다. 자신의 이름 '라바짜'를 상표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름을 상표로 하는 경우는 당시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름을 걸 만큼 품질과 맛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겠지요.



새로운 포장법으로 또 다른 도약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이태리도 연합국 일원으로 참전했습니다. 유럽 전역이 전쟁 여파로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습니다. 라바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라바짜는 가족과 직원을 독려했습니다. “전쟁은 곧 지나간다. 이를 대비해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자.”

그의 말처럼 전쟁은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납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는 법. 라바짜는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1923년 새로운 이중 종이포장 기법이 개발되고 커피 로스터기가 발전해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습니다. 공급이 부족했던 문제를 해결하며 판매망도 전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라바짜 커피가 이태리 대표 커피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중 종이 패키지는 캔과 더불어 이후 라바짜 패키지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1927년 법인으로 전환, 1936년 창립자 은퇴

1927년 커피를 만들던 식료품점(이때까지 회사명은 라바짜가 아니었습니다)은 라바짜의 아내 에밀리아(Emilia)와 자녀들이 참여해 150만 리라를 자본금으로 법인으로 전환했습니다. 회사이름은 루이지 라바짜 주식회사(S.p.A.), 라바짜의 나이 68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1936년 77세가 된 라바짜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합니다. 새로운 커피 역사를 쓴 팔순의 거장은 고향 무리센요로 돌아갑니다. 아버지가 살아온 모습을 지켜보며 배운 아이들이니 잘 하리라 믿으며.


회사는 세 자녀 마리오(Mario), 지우세페(Giuseppe), 페리클(Pericel)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라바짜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칩니다. 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1940년 독재자 무솔리니는 커피(생두)수입을 금지시켰던 거죠. 회사가 어려워지자 마리오는 회사를 떠났고, 페리클은 징집돼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지우세페만 홀로 남아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1946년 최초의 라바짜 로고 탄생


1946년 개발한 최초의 라바짜 로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페리클은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힘겨웠던 시절을 뒤로 하고 세 자녀들은 다시 뭉쳤습니다. 마리오는 관리부문을, 지우세페는 영업부문을, 페리클은 생산부문을 맡아 회사 재건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커피전문 기업으로서의 특성을 강력하게 드러내기 위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브랜드 로고를 개발했습니다. 1946년 밀라노의 한 스튜디오에서 최초의 라바짜 로고가 탄생했습니다. 또한 라바짜의 트레이드 마크인 캔 포장을 개발했습니다. 화살이 날아가기 위해선 시위를 뒤로 당겨야 하듯, 시련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초창기 영업 차량. 겉에 라바자 로고를 붙여 홍보효과를 꾀했다. 지금이야 익숙하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1949년 창립자인 루이지 라바짜가 세상을 떠납니다. 향년 90세. 이로써 라바짜 커피의 1기가 저물고 2기가 시작되었습니다. 2기는 라바짜가 이태리를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시기입니다.


(2회에서 이어집니다)


첨부파일 라바짜히스토리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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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 2022-05-11 11:14:36 0점
    수정 삭제 댓글
    스팸글 F1을 좋아하는데
    팀 윌리암스의 드라이버였던 니콜라스 라티피가 현 라바짜 회장의 아들이란 사실에 놀라며 라바짜 역사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2회도 기대해볼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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